질그릇에 담겨진 보배

12월을 보내면서 여러분의 노인들이 머리에 떠 오른다.

시민권을 취득하기 위해서 2년이 넘게 하루도 쉬지 않고 영어공부를 하시던 중 올해 암으로
돌아가신 7순이 넘으셨던 K할머니를 잊을 수 없다.
1년이 넘도록 26자의 영어철자를 암기 못하는 자신을 원망하시다 ‘여자는 공부하면 안된다’며
공부를 안시켜 주셨던 당신의 부모를 원망하시던 그 할머니.
아픈 몸을 주위 사람들에게 숨기신 채 시민권 취득을 위해 보이신 열정은 주위사람 모두를
안타깝게 했었다.

영주권을 받기 위해 한 마킷 주인으로 부터 수년간 온갖 구박을 받고 임금착취를 당하시며
취업이민 절차를 밟으셨음을 들었을때 인간의 잔인함과 메마른 사회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K할머니께서 그렇게까지 고생하셨던 이유가 불법체류자로 있는 딸과 사위, 그리고 한국에
두고 온 자녀들을 미국에 초청하기 위해서였다는 사실을 후에 전해듣고 자녀들을 향한 그분의
사랑에 나는 몸둘 바를 몰랐다.
그리고 그분의 내면에 담겨있는 사랑은 보지 못하고 사람의 가치를 학벌로, 돈으로, 그리고
외모로 재려했던 내 자신을 발견하면서 몹시 부끄러워했다.

8순이 넘어 시민권을 취득하신 R할머니.
한국전쟁때 남편의 행방을 잃으신 후 홀로 7남매를 모두 의사와 약사로 키워 놓으셨다.
4피트 약간 넘는 작은 키였지만 호랑이같이 매서운 눈을 부릅뜨시고 7자녀들을 공부시키기 위해
겪으셨던 인생 이야기를 하실때면 인간 승리를 거둔 큰 거인 앞에 선것처럼 느껴지게 하셨다.

본인의 이름을 한글로도 못 쓰시지만 월페어를 받아 자녀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시겠다는
신념으로 3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공부하셔서 당당하게 시민권 인터뷰를 통과하시던 날, 그분과
나는 인터뷰 심사관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사업이 망해 술에 젖어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아들에게 가정부로 버신 쌈짓돈을 매달 보내시면서
그 아들을 한국에서 초청해오기 위해 시민권 공부를 하셨는데, 아들이 간암으로 사망해버리자
‘에미’의 마음도 모른채 먼저 세상을 떠난 아들을 그리워하며 몇날 며칠을 눈물로 보내신
H할머니도 잊을 수 없다.

그분의 흘리시는 눈물을 보면서 그 눈물은 어쩌면 인류가 흘리는 마지막 사랑의 눈물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 사랑때문에 흘리는 눈물을 요즘 어디서 볼 수 있는가.

그분께서 지니신 사랑하는 마음을 ‘미국화’ 되어가고 있는 우리 세대도 영원히 간직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자녀들을 향한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마음을 자녀들은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단지 자녀들의 행복과 성공만을 원하는 마음으로 정든 고향마저 등지고 미국이라는 낯설은 곳에
와서 불편한 몸을 이끌어가며 자녀들의 사업과 가사일을 비롯해 손자 손녀들을 돌보고 계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

사실 전쟁으로 초토화되었던 한국을 세계경제 10위권에 올려놓은 것도, 그리고 날로 성장해 가고
있는 미국속의 한인 커뮤니티 발전도 말없으신 이 분들의 희생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던가?

타운내 교회를 비롯한 병원, 식당, 은행, 미장원 등 그 어느 업종도 한인 연장자들의 도움을
받지 않는 곳이 없지 않은가.

2000년을 보내면서 자녀들은 물로 커뮤니티 모두가 이 분들께 사랑의 빚을 지고 있음을 의식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올 연말에는 가족 모두가 모여 앉아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의 마음 속에 담겨진 인생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질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질그릇에 담겨진 보배’가 발견되는 따스한 연말연시가 기다려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