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바드 대학을 떠난 학생이 남긴 교훈

가난한 집에서 자라나서 어렵게 하바드 대학에 입학했던 한 여학생이 중태를 결정했습니다. 그 학생은 학생들의 기숙사와 학교 식당을 청소하여 학비를 충당했는데,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같은 반 학생들이 “노동자 계층”의 가정에서 자란 여학생을 오만하고 무례하게 대하였고,
한 남학생은 그녀가 일할 때 대놓고 성 관계를 요구해 왔습니다.
그 남학생은 이 여학생과 두 과목을 함께 청강했는데, 놀라운 것은 그 두 과목의 주제가
‘도덕과 이론’이였으며, 남학생은 두 반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으며 “총명한 학생”으로
지목된 사실입니다!
이 여학생이 학교를 떠나기 전에 담임 교수와 인터뷰를 하면서 남긴 말에 귀가 기울여 집니다.
“나는 여러 철학 과목을 들었고, 클라스에서 진리, 중요한 것, 좋은 것 등에 대하여 많은 대화를
학생들과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좋은 사람은 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서 좋은 것에 대한 지식만을
습득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입니까?”이 사건을 통해 충격을 받은 하바드 대의 콜(Cole)교수는 “지성과 인격의 괴리
(The Disparity Between Intellect and Character)”라는 제목의 논문을 펴냈습니다. 구약과 신약이 다루는 중심적인 주제가 바로 종교인들이 지닌 하나님, 예수님, 성경에 대한 풍성한
지식과 그들의 인격과의 넓은 괴리라고 볼 때, 하바드도 회당도 교회도 “사람
(human being)”을 “된 사람(being human)”으로 길러 내는 일에는 큰 결실은 맺지 못했다는
판단입니다.위에 언급한 사건과 관련해 교육계의 전반적인 반응은 시큰둥했습니다.
왜냐하면 대학교의 사명은 사회에서 성공할 인재를 길러 내는 일이지, 도덕적인 사람을
길러내는데 있지 않다는 데 대다수 동의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교회의 대사명은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바르게 사는 사람을 길러 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에서 이야기 하는 바르게 산다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 도리, 즉 부모를 공경하는 일, 자녀를
잘 보살피는 일, 아내와 남편이 서로를 존중하는 일, 회사에서 사장은 직원의 봉급을 제대로
주고 직원은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일, 권세를 가진 자는 백성을 위해 헌신 하는 일이며,
더 나아가 소외된 이웃을 섬기는 일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문제는 교회가 기독교의 존재 목적을 상실한 채 하바드가 추구하는 목적을 모방
하려는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 없이 많은 사람들 속에서 의인은 한 사람도 찾을 수 없었다는 기록은(롬3장) 연약한 인간성을
정확하게 파악한 말인 동시에, 교회가 당면한 막대한 도전을 인식시켜 줍니다.

성공의 꿈을 품고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자신을 비우고 고난의 십자가를 지기까지 바르게
사는 일이 기독교의 본질인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모두 도망갔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교회에 모여 드는 현상은 바로 기독교와 사람의 본질을 올바로 인식하지
못한 혼탁한 상황을 반영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교회도 많고 목회자도 많지만 “교회와 사회와의 괴리,” “설교와 실천의 괴리”가 계속 지적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 바르게 사는 사람, 허덕이는 양 때를 긍휼히 여기는 목회자, 그리고
사회가 필요로 하는 교회가 그립습니다.

주는 사랑체는 “아는 것”과 “삶”과 “인격”의 일치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표어가 “배우고, 나누고, 섬기고 (행 2:44-47)”입니다. 올바른 것을 배우고(물론 무엇이
올바른 가에 대한 정의도 쉽지 않습니다), 배운 것을 가정과 사회에서 실천하는 과정을 통해
건강한 인격체와 가정, 그리고 밝은 사회를 이뤄 가려고 합니다.